주동두중병금, 시금 이비. 주동두중의 '신약병금비'와 '봉헌시금비'는 청 함풍 2년(1852년)에 세워졌으며, 비문은 오늘날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주동 지역의 청대 토지 공의와 개간 역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주동두중의 '신약병금비'와 '봉헌시금비'는 청 함풍 2년(1852년)에 세워졌으며, 비문은 오늘날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주동 지역의 청대 토지 공의와 개간 역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중 '봉헌시금비'는 담수 동지 장계선이 포고를 내린 것입니다. 비액은 모서리가 잘려나가 '봉헌시금' 네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비문에는 건륭 연간(1777년)에 죽참성 포호 진천원 등이 '원산자포지'를 공동으로 매입하여 함께 개간할 목적으로 사용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토지 강점 분쟁이 발생했고, 재공의 후 일부 토지는 공용 목축지와 빈민 묘지로 할당되었습니다. 관부가 사실을 확인한 후, 백성들에게 경고하고 부당한 침탈을 금지하며 위반 시 법에 따라 처벌하겠다는 뜻을 알리기 위해 이 비석을 세웠습니다. 비문 끝에는 건륭 42년(1777년)의 계약서가 첨부되어 있으며, 죽참사 통사 정노문, 토목 십반 등이 족지를 임흠당, 증일휘 등에게 매각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약병금비'는 '봉헌시금비'와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으며, 주로 계약 문서입니다. 비액 역시 모서리가 잘려나가 '신약병금비'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비문에는 토지가 원래 목초지로 사용되었으며, 사람들이 150원을 출자하여 토지를 구매했고, 계약자에는 23명의 최초 사업주와 30명의 승계 사업주가 포함되어 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계약서에는 토지가 공용으로 사용되며 임의로 침탈할 수 없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비문에는 비석을 세운 이유도 첨부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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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竹縣